첫날 누와코트의 데비가트 마을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것을 홍수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의심했다. 건물 1층까지 진흙과 잔해가 차오르거나, 아예 건물이 안 보이는 곳도 있었다. 주민들은 무릎까지 빠지는 뻘 속에서 남은 살림을 건져내고 있었다. 상점과 식당과 여관이 있던 다리 건너편 시장 거리는 통째로 강바닥이 되어 있었다.
이틀 뒤 라수와의 베트라와티 바자르에 갔을 때는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강과 만나는 지점에 있던 이 시장 마을은 마을이 아니라 넓은 강이 되어 있었다. 바위와 진흙과 부서진 콘크리트, 뒤집힌 스쿨버스가 강 한가운데 반쯤 묻혀 있었다. 물이 차오른 흔적이 아니라 물이 밀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물이 아니라 산이 내려온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을 재난 지원의 관점에서 홍수가 아니라 강을 타고 온 쓰나미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응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 홍수가 휩쓸고 간 네팔 라수와 지역의 모습 ⓒ 이장우
밤새 산길에 갇히다
구호물품을 싣고 집결지로 향했다. 정부 담당자가 알려준 우회로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흙길로 바뀌었다. 해가 지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길을 가로지르는 물살이 거세지면서 차량들이 모두 멈췄다.
엔진을 끄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 불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물이 차 바닥 가까이까지 올라왔다. 내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세 시간 가까이 지나 새벽 3시 45분에야 비가 그쳤고, 차량들이 다시 움직였다.
이 하룻밤의 결론은 육로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방식은 위험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트럭 한 대를 더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지원을 설계하는 일이다.
살아남은 550명의 학생, 부모를 잃은 120명
새벽 5시에라수와의칼리카스탄에도착했다. 마을사람들이집밖높은곳에모여있었다. 4시반쯤산쪽에서 홍수가나서 모두 밖에 나와있다고 했다. 사람들의눈에불안과공포가그대로있었다. 우리는잠시그들곁에서있다가구호집결지로향했다.
아침에서야 도착한 집결지는언덕위의스리닐라칸타중등학교였다. 학생이 550명인학교인데, 학교가높은곳에있어학생들은살아남았다. 그러나학생들의집은아래베트라와티바자르에있었다. 교장선생님은학생가운데 120명가량이부모와가족을잃었다며, 어떻게해야할지모르겠다고말했다. 물자를서명하고인수인계하는동안에도그말이계속귀에남았다.